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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14일] (3/10) '쟤......6개월이라도 더 살 수 있을까?' - 2015.09 ~ 2016.01

keepmymind 2025. 4. 14. 22:51

2014년 12월 초, 담당자 정제범은 당시 문일고에 새로 생긴 수학실 공간에서 내게 말했었다.

 

"세상은 전혀 너의 생각처럼 선한 곳이 아니고 세상도 문일고와 다르지 않아. 다만 세상은 넓은 문일고랄까......"

"한홍아 세상은 원래 선한 곳이어야하지만 지금은 악한 곳이야. 사탄의 세상같이."

 

그 말을 정제범이 말한 전날에도 그는 내 속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내 속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함으로서 내가 혹시라도 화를 내면 퇴학 처리하려는 시도를 하려는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견뎠었다.

 

하지만 그 날 깨달았어야했다.

 

문일고 이사장과 비리를 주도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틀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이미 그 때부터 나는 생각이 읽히는 사람이었을테고 나를 악의적으로 만든 매체도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 등을 한 후 정제범은 그 다음 수업부터 내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로 합의한 날까지 자신의 수업시간인데도 3학년 5반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말을 들은 다음 주 여의도 모 지하초밥집을 가던 길에 길거리를 걷다가 누군가로부터 묻지마 해코지를 당할 뻔했기에 나는 그 당시 이미 매체도 존재했고 나는 그 당시에도 생각이 읽히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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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총 7개의 수업을 들어야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7과목을 수강신청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B반 학생들이 함께 들어야했던 글쓰기 수업, 영어 회화 수업 그리고 내가 신청한 

조직행동론. 무역학 수업. 경영통계학 등을 들어야했다. 

 

수업들을 듣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내가 앞자리에 앉지 못하면 내 앞에 있는 여학생들은 나를 흘겨보면서

머리를 털면서 미소를 지었고 심지어 머리를 털지 않는 여학우가 있으면 그 여학우의 머리를 옆자리에 앉던 친구가 털기도 했었다.

 

결국 나는 학교에 빠르게 가서 맨 앞에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내 눈으로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있었기에.

 

하지만 조직행동론 수업을 들을 때 '나는 문학. 철학. 역사에 자신이 있고 경영학 수업이 버겁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교수조차 학생들이 모두 듣는 앞에서 경영학과에서 문사철 학과로 전과하라고 간접화법으로 말했었고 그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과 비리를 저지른 문일고가 아무리 비리를 저지르고 부정을 저질렀을지라도 교육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너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깨달았다.  

 

결국 정신이 분열되면 안 되었기에 나는 시험을 보거나 중요한 수업을 들을 때는 무조건 맨 앞 자리 귀퉁이에 앉았다. 최소한 사람들의 시야를 볼 수 없는 자리에 앉았다. 

 

그 후 음료수를 마시면서 시험을 보았다. 긴장을 풀어주고 누군가의 조롱과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지키고 최소 수업시간에는 분노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많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목과 안면근육이 경직되는 증세와 목 틱 증세로 인해서 고생했던 시점이었기에 타이머를 통해서 40분 앉아있으면 10분은 무조건 일어나있도록 했다. 몸이 아프면 더 나 자신이 취약해지기 때문이었다.

 

당시를 돌아보면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었고

내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는 나 한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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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회화 과목 시험을 보던 날 시험을 준범이와 함께 한 조로 보고 있었는데 

내가 1학기 때 좋아했던 학우가  밖에서 계속 헛기침을 하였다. 

아마 자신에게 신경을 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헛기침을 했었는데 

나는 속상했지만 헛기침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신기했다. 그 전까지는 박문재. 박종두의 헛기침 싸인이 두려웠는데

그 날부로 헛기침에 대한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날 깨달았다. 아무리 큰 상처여도 시간이 조금씩 사람의 상처를 아물도록 만든다는 것을.  

 

그럼에도 분노와 공포는 계속 반복되었다. 예를 들면 흑석 길거리를 걸을 때 두 명의 여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홧병걸리게 해서 쟤를 죽게 만들자"는 소리를 듣고는 너무 화가 나서 법학관 6층에서 7층으로 이동하던 도중 한 명의 남학생이 나를 째려보자 결국 분노가 터진 적이 있었다. 

 

몸에 있던 동전들을 냅다 던지고는 '나를 죽이고 문일고에 가서 보상금 받으라'고 외쳤었다. 너무 어린 언행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었다. 그리고는 다른 강의실에 가서 있는 지폐들을 모두 던졌었다. 

 

이성을 되찾고 돌아오니 지폐들은 사라졌지만 동전들은 남아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엉엉 울었다. 상황은 바뀌지 않을테고 내 내일도 고통스러울테지만 그럼에도

감정이 복받치는 것은 막지 않았었다. 

 

매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자신의 귀에 가져다댄 후 후비고는 했다.

내 추측이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비록 매체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내게 매체를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매체를 본 적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보지 못한 상황이다. 심지어 2015년 크리스마스날 내가 문일고 비리를 알리는 글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3호선을 타고 이동중일 때 경복궁역에서 매체를 보지 못하는 처지에 대해서 생각하자 한 60대 중년 아저씨가 자신의 손가락을 자신의 귀에 가져다댄 것을 보면 그 당시까지도 누군가가 매체를 내게 보여주었을 거라는 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매체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답답했고 

그보다 더 답답했던 현실은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은 채

나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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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극한의 상황에 몰리자 죽을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20살밖에 되지 않은 학생이었고 믿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기에 내게 선택지는 길거리의 사람들이 종용하는 것처럼 자살을 하느냐 

아니면 살아남아 정말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문일고의 비리와 부정을 알리고 드러내기 위해 시도하느냐 뿐이었다. 

 

그 당시 많은 생각을 했었다. 6명의 학생들, 최소 8명의 문일고 어른들이 비리. 부정에 참여했기에 내가 버티다보면 10년 안에 비리. 부정이 드러날 수는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일이 매우 힘들고 벅찼었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조롱과 모멸이 계속되었는데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문일고 비리가 결국 어떻게라도 드러날 수 있을지 알아보고자 문일고에 단 한 번만 가보기로 했다. 

 

그 때 내 나이는 20살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가기 며칠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글: [4/10]  '생각이 읽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소중해' (2015.12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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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을 적기 시작할 때까지만해도 문일고에서 20살 때 겪은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지만

시간적인 한계로 인해서 다음 글에서 적게 되었습니다.

 

아니, 시간도 한계가 있었지만 사실 글을 적으면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사실 속도 많이 상했고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더 이상 저를 함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글 작성을 중간에 멈추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지금도 지내고 있는 친구 승인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지내고 있는 몇몇 타대 출신 선배도 있기에 그 당시의 시간들이 고통들과 고난들의 시간들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불편한 진실이지만 세상을 살 때 중요한 깨달음인 19살 5월까지만 해도 세상 거의 대부분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었던 제 생각에 오류가 있었다는 진실을 깨달았고

차등은 존재할지라도 사람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된다는 믿음

그리고  19살 때까지는 사람을 능력과 학벌 등 겉모습으로 많이 판단했는데 사람을 학벌. 인맥 등과 같은 겉모습으로 결코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진아)과 사람됨으로 보아야한다는 소중한 관점을 공고하게 다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서두에 적은 정제범 담당자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들의 비리. 부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불편한 이유로 인해서 제게 위와 같이 말했을 겁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선한 곳은 아니지만 악한 곳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세상은 밝은 곳도 있고 어두운 곳도 있으며 밝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점도 있고 어두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시점도 있다는 생각도 현재는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2015년 11월 글쓰기 시간에 교수님이 성선설을 믿는 사람들을 손들어보라고 한 후 성악설을 믿는 사람들도 손들어보라고 했을 때 3분의 2의 학우들이 성악설을 믿는다고 손을 든 것을 보았을 때에는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설령 세상에 어두운 이면이 존재할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을 신뢰하고 세상은 선해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설령 세상에 어두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더라도 그 어둠을 거두고자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악하다는 믿음을 20살. 21살 학생들이 가지는 모습을 보았고

세상의 어두운 면이 주축이 부각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한다고 말하는 주변 친구들도 존재하는 사회를 보면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고 경력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서도 서로 함께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설령 세상에 악한 어두운 면이 있더라해도 그 면들을 거두고 정화하면서 더 밝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어도 결국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사법 체계... 꼭 공정하고 일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큰 기대이겠지만 그리고 그 후에 이루어지는 더 성숙해진 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자정작용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록 저는 아무런 힘도 없고 건강도 잃었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저보다 더 건강도 좋고 역량도 있는 분들이 위와 같은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진심을 담아 적었음에도 부족함 많았던 위 글 작성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