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2025년 04월 12일] (2/10) 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범죄자가 맞아-2015.08~ 2015.10

keepmymind 2025. 4. 12. 09:59

동생의 열여덟번째 생일인 2015년 8월 10일부로 문일고를 잊겠다고 페이스북에 적은 나는 

8월 10일에 문일고를 잊겠다고 글들을 적었었지만 남아있는 관련 글은 위 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위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내 당시 주변 사람의 이름 등 개인정보가 담긴 내용은 마스킹했습니다. )

 

지금도 정신을 잃을 뻔할 때가 있지만 2014년 8월 10일부로 죽으라고 속삭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신을 잃은 채 살아가야했다. 

 

그 당시에도 사람들은 매체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내게 아무런 정보들도 공유하지 않고는 나를 범죄자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적 내 콤플렉스였던 내 신체적인 약점을 이용한 싸인들을 사용하면서 내게 자살을 강요했었다. 

 

아무 것도 몰랐던 나는 바보같게도 세상이 거대한 트루먼 쇼인지 의심한 경우도 있었고 어떨 때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대응능력도 없었고

 

트루먼 쇼인지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당시 하루에 9시간씩 밖에 있거나 집 앞 복도를 보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외면하는 사람들 또는 내 신체적 약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줄은 모른 채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비리의 유무에 대한 소통, 이 사건의 인과관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무조건 매체의 내용만이 맞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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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돌아간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설령 내가 위험해지거나 정신을 잃게 되더라도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직면해있는지 알기 위해 

나는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이후의 생활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를 째려보거나 비웃는 사람을 보는 것도 다반사였고 (10명 중 3~4명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조그만한 목소리로 '그냥 죽어'라고 말하고 지나가던 학우들도 매번 있었다. 또한

내가 2014년~ 2015년 당시 문일고에서 사용된 헛기침을 두려워하는 것을 아는 몇몇 학우들은

내가 발표를 하게 되는 시점 등에 헛기침을 수업 중에 하면서 나를 두려움 속으로 몰았다. 

 

2015년 10월부터 

문일고 사학비리에 대한 생각만 하면 사기꾼이 되어버렸다.

 

2015년 10월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법학관으로 이동하던 도중 어떤 여학우가 문일 만세라고 말한 후 킥킥거라면서 자신의 손을 휘두르는 것도 보았다.

 

또한 매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 또한 조롱거리가 되어 '무능한 새*'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질을 하던 남학우도 보았다.

 

하지만 이 혐오와 조롱은 중앙대학교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2015년 추석 근처 송파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기운을 거의 잃고 쓰러질 뻔하던 때에도 사람들은 나를  공격하는 싸인을 사용했고 어떤 남자는 빨리 죽으라고 속삭이면서 지나갔었고 지하철역으로 간신히 걸어간 후 계단을 내려갈 때도 조롱과 공격은 계속되었다.

 

2015년 10월, 3호선 지하철을 타던 도중 어떤 대학생 여성이 죽어죽어라고 외치면서  휴대폰 게임을 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 사람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매일매일 밖에 외출할 때마다 반복되고 당시

조직행동론 수업 때 들은 것처럼 나는 우울함 -> 두려움 -> 분노 -> 우울함을 계속 반복하며

절망스러웠던 상황에 감정이 함몰되어버렸다.

 

길을 걷는 일도 힘들었고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 눈이 차라리 멀어 맹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설령 죽더라도 사기꾼이 되고 악한 사람으로 인식된 채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해코지를 당하면 자살하고자 삼다수 병에 면천에서 가져온 농약을 넣은 후 몸 속에 품고 살았던 때도 당시 있었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 문일고에서 일어난 일들과 사학부정을 알리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아무 힘도 없고 빽도 존재하지 않는 내가 20살에 자살할 시

나는 사기꾼으로 기억된 채 세상에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19살 때 언어폭력과 폭압을 학우들 뒤에서 받으면서 살아왔는데

20살 때 그것이 모두 부정된 채 거짓말쟁이로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60대(또는 70대?) 남성으로부터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조롱을 당시 신대방동에서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 날 해질녘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나는 자살하지 않고 사는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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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다보면 나만 댓글을 달지 못하게 설정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내가 매우 위험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사적 계정. 뉴스 계정 등에 댓글을 거의 적지 않는 나이지만

 

소통은 사라지고 내 심리에 따라서 정답을 결정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착잡하다. 

 

우리 사회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유로 

다른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심지어 불법을 저지른 해커들의 주장은 무조건적으로 맞다고 외치는데도

이미 법으로 증명된 비리. 성폭행 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인스타그램 공간에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 공동체는 이미 선택적이고 내 결정만이 옳다고 믿는 확증 편향이 강해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 측면으로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큰 걱정이 든다. 

 

 

번외로 마지막 사진은 2014년 11월 3일에 내가 *강대학교 면접을 마친 날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문일고 사학비리 기록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개인정보 등이 담긴 내용은 마스킹하였습니다. : 위 글 세 번째 문단 관련 이야기(최종 생기부에 나오지 않은 내용들이 나 혼자 스스로 적은 자소서에만 나와있어서 생긴 면접 이야기)는 문일고 사학비리 이야기를 적을 때 짧게 다루겠습니다.

 

비록 당시 내가 믿었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내 곁에 없고 당시의 목표들은 거의 모두 내 마음 속에서 희석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까지 마지막까지 버티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강하게 먹은 2014년 11월 초의 그 날을 돌아보면서

어떠한 순간에서도 위 글에 적은 내용들과 내 초심을 지키겠다고 마음먹으며 해당 글 작성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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